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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16 1940년대 후반의 한국 1
posted by Belle〃♬ 2007. 7. 1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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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해방을 환호하는 서울역 광장과 남대문로 일대의 인파 - 만나는 이마다 서로 부둥켜 안고 목이 터져라 해방 만세를 외치면서 밤이 되어도 흩어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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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항복 소식에 환호하는 서울역 앞 시민들



어는 책의 저자가 던졌던 질문, 즉 '2000년대의 시각으로, 1940년대 후반 대한민국의 해방정국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에 대해 이해못할게 하나도 없다라고 필자는 생각을 했지만 1940년대 후반의 한국의 모습을 살펴보고는 점점 그 시대를 이해하는 것이 정말 어렵겠구나.. 라는걸 느꼈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한국사가 굉장히 뜨겁지만 그 뜨거움은 나름대로 '반공'의 안전장치 안에서 '민주'.vs.'반민주'의 구도였다고 보았을때, 1940년대 후반의 한국사는 '친공'.vs.'반공'의 구도였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는지 모르겠지만, '반공'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어색하면서도 악(惡)스럽게 포장되어 내려왔다. 물론 지금도 '반공'이라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지만 어쨋든 '반공'이란 공산주의를 가르키는 단어였다.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죄악스럽게 결정하는 능력도 대단하다. 우리가 쭉 그렇게 배우고 강요(?)당한 그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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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과 영국, 소련의 삼상회의에서 5년간 한국에 대하여 신탁통치 결정이 내려지자 독립을 간절히 원한 시민들이 신탁통치 반대운동(반탁)을 벌이는 모습. 처음에는 우익과 좌익 모두 반탁운동을 하였으나 좌익이 갑자기 노선을 변경하여 찬탁운동을 벌였다. 이는 우익과 좌익의 심한 대립을 초래하기도 하였는데, 이승만으로서는 상당히 반가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친공'.vs.'반공'의 대결구도보다는 '우익'.vs.'좌익'의 대결구도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오히려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익과 좌익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다고 본다. 우익도 강경우익과 온건우익이, 좌익도 강경좌익과 온건좌익이 존재했다.

그렇지만 혼란스런 해방정국에서 온건파는 철저히 무시당하고 억압을 당했다. 그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 그러한 모습은 역사에서도 많이 봐온 터라.

그러나..
그 이데올로기가 정상적으로 발동걸렸는지도 의문이다. 1940년대 후반의 이데올로기는 원한관계나 출세의 목적, 먹고살기 위해서 본의 아니게, 자기가 신봉하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활동했던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고 본다.

아버지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당하여 극우익의 극치를 보여줬던 김두한이나, 돈있는 우익단체에 들어가 생계를 유지했던 사람들, 출세를 위해 이데올로기에 상관없이 눈치만 살폈던 사람들. 그것이 1940년대 후반 한국의 모습이었고 그것을 보고 우리가 이데올로기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좀 우스운 것 같다.

해방직후 어처구니 없게도 미국의 대소련에 대한 한국의 38선 제의가 먹혀들었고, 그 이후에 38선 이북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친공세력이, 38선 이남은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반공세력이 주름을 잡게 되었고, 이 주도세력에 역행하는 많은 부류들은 우리들이 이해하기 힘든 많은 일들을 저지르게 되었다.

권력에 굉장한 욕심을 부렸던 이승만은 당시 지주였던 친일파들과 손을 안잡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막대한 정치자금을 바탕으로 이승만은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는 점으로 보았을때, 1940년대 후반 38선 이남의 한국은 이승만 세력인가 아닌가의 대결구도 였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1940년대후반의 한국은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혼란의 시대였다고 봐야겠다.

1940년대 후반의 한국 모습은 한국의 운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시기였고, 자신도 잘 모르는 이데올로기에 대중들이 빠져있던 시기였으며, 그로인해 엄청난 사건과 사고가 있었던.. 그렇지만 그 많은 것들이 '반공'의 틀과 우익스러움 안에서 평가되었던 아픈 시기이기도 하다.

그 시절 사건에 대하여 사실과 진실로 진술을 하여도 반공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가해지면(사실 반공에 흠집이 가해지는게 아니고, 그들[친공&극우익]의 약점에 거슬리면) 여지없이 제재가 가해졌던 시절이 많이 지난 옛이야기는 아니다. 현재까지도 그러한 모습이 남아있지 않다라고 보장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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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이 정말 말 그대로의 국가보안법인가?


"내가 무얼믿고 이야기해. 아직 다 산것도 아닌데. 그런 이야기를 뭐땀에 할라고. 왜 목숨걸고 그런 이야기를 해" 하며 면담 요청을 거부했던 할머니의 이야기가 1990년대 중반 시절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믿을 것인가..

1940년대 후반의 한국은 왜곡된 보도와 보고가 정말 많았을 것이다. 올바른 역사를 위해서라도 위의 할머니와 같은 경험자의 입을 열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또다른 숙제라고 본다.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어도 아직 부족한 것이 많으니, 그 시대에 살았던 산증인들이 먼곳으로 가시기 전에 빨리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