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Belle〃♬ 2017. 1. 13. 14:45

국가보안법 찬반 논쟁


여순사건이 거의 진압되어 가던 1948년 9월 29일 잠자코 있던 내란행위특별조치법안이 다시 등장하여 국회 본회의에 제출되었다. 이 법은 곧 '국가보안법'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사회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 법은 공산주의를 불법화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정의와 처벌 규정이 아주 모호해서 정권이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데에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었다.


국회에선 한반 논쟁이 벌어졌다. 

야당 국회의원 조현영은 이렇게 말했다.


"속담에 고양이가 쥐를 못 잡고 씨암탉을 잡는다는 격으로 이 법률을 발표하고 나면 안 걸릴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 일본놈 시대와 같이 잡아다 물 먹이고 이놈 자식이 그랬지 하면 예예 그랬습니다. 이래서 거기 다 걸려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정치적 행동 하는 사람은 다 걸려 들어갈 수 있는 이런 위험도 있으니까 우리가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약을 꼭 써야 하면 분량을 맞추어서 써야 하는데 이 법안은 분량이 맞지 않습니다."


김옥주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보안법은 포악무도한 일제 침략주의의 흉검이라고 할 수 있는 치안유지법과 똑같은 비민주적 제국주의 잔재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하는 이 마당에 ······ 제국주의 잔재 폐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반면 찬성파인 박순석은 "농사짓는 농민은 피를 압니다. 피를 한 포기 뽑자면 나락을 다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피를 안 뽑을 수가 있습니까?"라고 주장했다.


법무장관 권승렬에 따르면,

"지금 우리는 건국을 방해하는 사람하고 건국을 유지하려는 사람하고 총·칼이 왔다갔다하고 하루에 피를 많이 흘립니다. 즉 국가보안법은 총하고 탄환입니다. ······ 이것은 물론 평화 시기의 법안은 아닙니다. 비상시기의 비상조치니까 이런 경우에 인권옹호상 조금 손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가불 건국에 이바지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 11월 14일자 사설 <국가보안법을 배격함>은 국가보안법이 "크게 우려할 악법이 될 것"이며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빨갱이는 무조건 포살(捕殺)해야 돼"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한민당과 이승만 지지세력의 연합에 의하여 1948년 11월 20일 국회를 통과해 12월 1일 공포되었다. 이제 통일 논의 자체가 어럽게 되었다. 북측에 무엇을 제안한다거나 남북회담을 하자거나 합작을 하자는 것도 국가보안법에 따라 처단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을 가장 원한 사람은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은 당시 법무부 검찰국 초대 검찰과장 겸 고검 검사로서 '빨갱이 잡는 검사'로 이름을 날린 선우종원에게 "빨갱이는 무조건 포살(捕殺)해야 돼"라고 격려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장택상이 즐겨 던지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세 사람이 누군지 아나?" 답은 "이승만, 나 그리고 김두한이야"였다. '빨갱이 사냥'에 있어서 세 사람은 상중하 역할 분담이 잘 이루어진 삼위일체였던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곧 괴력을 발휘하였다. 외무장관 장택상이 유엔한국위원단에게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1949년 4월까지 국가보안법으로만 체포된 숫자는 8만 9천700여 명이었다. 49년 한 해에만 체포된 인원은 11만 명 이상이었다.




출처 : 한국 현대사 산책 - 1940년대 편, 강준만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