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Belle〃♬ 2007. 8. 2. 23:08

5. 이승만 정권의 여론 조작

토벌군과 정부는 허위사실까지 유포하여 '여순 지역 죽이기'에 나섰다. 어린 여학생들이 총을 들고 싸웠으먀 국군에게 '오빠!' 하고 달려가서 치마 속에서 총을 꺼내 국군을 죽였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전혀 사실무근이었지만 널리 유포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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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군이 주민들을 초등학교로 이송중인 모습

소령 함병선은 어린 여학생이 전봇대 뒤에 숨어 자신을 총으로 쏘았는데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비켜갔다는 증언까지 남겼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여학생을 훈계해서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당시 여수에서 군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극의 잔인성에 비추어 볼 때에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바로 이런 식의 이야기와 소문이 정부의 강경 대응책을 내놓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승만은 1948년 11월 4일 여순사건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앞잡이'가 되었고, 여학생들도 심하게 반란군에 가담하였다고 발표해 여론을 호도하였다.

엄격하게 동제된 신문들에 의한 여론조작은, 학살은 은폐하고 '미담(美談)' 수준의 이야기만 양산했다. 임종명이 이 시기 신문기사들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처음에는 "양민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작전" 대신 "소극적인 작전"도 마다 않았던 "관군"이 시내에 돌입해서는 "먼저 식량창고를 탈취하여 시민의 식량을 확보"하고 "서(西)국민학교나 여수국민학교에 수용"된 "피난민에게는 주먹밥을 나누어 주"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국군"의 모습을 재현했으며, "국군"은 "인명을 보호"하는 수호천사로 묘사되었다.

또 문교부는 문인들을 현지에 파견해 시찰을 시킨 다음 정부에 유리한 글을 쓰게 했다. 박종화, 이헌구, 정비석, 최영수, 김송 등은 서울역에서 문교부장관의 전송을 받으면서 기차를 탔다. 『동아일보』 48년 11월 24일자에는 진압작전에 참가했던 한 작전장교의 언급을 박종화가 윤색하여 정리한 글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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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군에 희생된 경찰관&의용단원

"우리 민족은 이렇게 나가야 하고 이렇게 싸워야 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렇게 죽어야 하는 것을! 확고부동하게 조직적으로 체계 있게 머리 속에 깊이 넣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공연한 미국식 민주주의, 미국식 자유주의가 이런한 혼란을 일으켜 놓은 것입니다. 이 악랄한 세계 제패의 공산주의자의 사상은 학교뿐 아니라 군인과 사회 속 각층 각 방면에 침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 불행한 이 반란을 일으킨 원인입니다. 정부에서는 우리 민족이 가져야 할 국시를 하루바삐 명확하게 세워서 3천만 전민족의 머리 속에 깊이깊이 뿌리박고 일어나도록 교육하고 선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승만 정권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전역에 게엄령을 확대했으며, 게엄령은 다음해 49년 2월 5일까지 지속되었다. 정부는 반란을 일으킨 14연대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전국적으로 각 건물에서 4호실을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고, 토벌작전에 지장이 있다고 3개월 동안 여수-서울 간 열차를 없애 버리고 전주-서울 간만을 오가게 했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 편 -강준만 저- 2권 181~183쪽